어서오세요,
독립출판물 〈살려고 서점에 갑니다〉를 쓴 이한솔입니다.
제 직업은 작업치료사입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에세이 〈작업의 고수〉를 썼습니다. 이때 다시는 책을 쓰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독립서점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코로나19와 도서정가제 개정으로 위기에 처한 독립서점을 가만히 지켜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독립서점 운영자들께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충동적으로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이 책은 독립서점 단골손님, 아니 친구의 눈으로 바라본 독립서점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도 살려고 그리고, 사려고 서점에 갑니다. 독립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가까운 독립서점에 한 번만 방문해보시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기적이 일상이 되기를,
이한솔 드림 @lee_pinetree
#책방지기추천책
#살려고서점에갑니다
#작업의고수
✓ 서점입고 주문은 이한솔의 이메일 hans5004@naver.com로 문의하세요.
살려고 서점에 갑니다.
인생 전환점을 맞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작업치료사다. ‘작업치료사’라는 단어를 지웠다. 나는 無다. 응? 내가 사라졌다. 작업치료사가 아닌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작업치료사’라는 단어가 없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무엇을 좋아하지? 아, 나는 책을 좋아해. 글 쓰는 사람을 동경해. 나도 글을 쓸까? 글은 어떻게 쓰지? 글 쓰는 사람을 만날까? 어디서 만나지? 인터넷을 검색했고 글쓰기 모임 회원을 모집하는 서점을 발견했다. 주변에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학교와 직장 말고는 대외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잘할 수 있을까? 약간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글쓰기 모임 신청합니다.’ 그때는 몰랐다. 내 삶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음을.
2018년 8월, 폭우가 내렸다.
예상치 못한 침수로 직장에 지각했다. 종일 정신을 놓아버려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퇴근할 즘 도로 상태가 회복됐다. 버스를 타고 어느 동네에 다다랐다. 낯선 골목을 지나 낯선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그곳은 글쓰기 모임 회원을 모집한 ‘삼요소’ 서점이었다. 삼요소 대표님은 음료를 대접해주셨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끔찍한 아침의 잔상을 지웠다. 마음이 진정되자 요리조리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조명, 어둡지만 차분한 색감의 벽지, 형형색색 포스터. 누구든지 반할만한 공간이었다. 나는 이미 누군가 자리를 잡은 책상에 앉았다. 처음 방문한 공간에서 초면인 사람과 대화했다. 나로서는 의례적인 일이었다. 약속된 시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책상을 빙 둘러앉았다. 삼요소 대표님도 합석하셨다. 그는 매우 수줍어하며 첫 마디를 내뱉으셨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푸흐흐흡 저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나는 그의 솔직한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가 이내 공감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도 사람을 만나러 그곳에 갔기 때문이다.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사람을 모을 만큼의 가치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첫 모임은 참가자들이 이전에 썼던 글을 공개했고 서로 감상평을 말하거나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솔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삼요소 대표님은 얌전한 나에게 말을 걸으셨다. 겨우 질문에 답변했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여태껏 단체 활동을 싫어했다. 특히 학교 엠티와 직장 회식 자리가 불편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금방 친해졌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잘 섞이지 못하는 나를 다그쳤다. 반면 삼요소 대표님과 글쓰기 모임 동료들은 조용한 나를 차분히 기다렸다. 나는 조금씩 긴장감을 덜었고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글쓰기 모임은 주 1회, 6주간 진행됐다. 매주 키워드를 정했고 관련된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썼다. 1주 차 주제는 ‘치맥’이었다. 나는 머리를 꽁꽁 싸매다가 사행시를 지었다.
치과에 갔다. 아들에게 충치가 생겼다.
군것질을 계속 허용한 탓이다. 우리 아들은
‘킨더조이’를 좋아한다. 달달한 초콜릿과 귀여운 장난감.
가히 유혹적이다. 아들은 의사 선생님 말씀에
맥이 빠졌다. “앞으로 초콜릿을 적게 먹어라.”
의사 선생님은 표정이 어두운 아이에게
주황색 호랑이 ‘티거’가 그려진 칫솔을 주셨다.
아이 얼굴에 꽃이 폈다.
치과 선생님과 약속했다. 초콜릿 조금만 먹기로.
나한테 선물도 주셨다. 너무 좋아서
‘킨더가튼(kindergarten)’에 가져왔다.
엄마가 치카치카 할 때 쓰랬다. 쿵쾅쿵쾅.
맥박 뛰는 소리가 온몸에 퍼졌다.
밥을 허겁지겁 먹고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갔다.
주머니에 꼭꼭 숨겨둔 보물을 꺼냈다.
안녕, 티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같은 키워드 아래 다른 형식의 글들이 탄생했다. 동료들은 서로의 글에 대한 감상평과 피드백을 멋들어지게 말했다. 나는 그런 종류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서 말 한마디 꺼내기가 무척 버거웠다. 모임을 거듭할수록 나의 문체를 알아갔다. 나는 주로 경험을 서술했다. 형식과 내용이 단순해서 참 매력 없는 글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성숙한 감성과 표현력으로 시와 소설을 썼다. 나는 열등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성실히 참여했다. 고단한 업무를 끝내고 삼요소에 들어서면 이상하게 힘이 솟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과 글을 매개체로 주고받는 대화가 특별했다.
길고 짧은 6주간의 시간이 흘렀다. 내 의지로 시도한 도전이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덕분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나는 글쓰기 모임을 통해 글쓰기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물 안에 갇혔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오는 기적을 체험했다.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야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나의 존재 가치가 높아질 거로 생각했다. 마음속에는 외부와 소통을 차단하는 벽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좁디좁은 우물에 갇혀 폐쇄공포증을 앓았다. 혼자 힘으로 높은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때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이 사다리를 내려주었다.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았고 우물 밖으로 나왔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죽어버렸던 존재감은 공동체 안에서 드러났다.
2019년 6월, 삼요소는 이슬아 작가님을 초빙했다.
강연을 듣고 나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샀다. 나는 시와 소설을 우러러보았고, 경험을 서술한 글을 저평가해왔다. 이슬아 작가님의 책을 읽고 어떤 경험이든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시시콜콜한 경험도 그저 쓰고 싶어졌다. 삼요소는 내 마음을 어찌 알고 한동안 쉬던 글쓰기 모임을 개설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한솔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거나 무작정 쓰기’입니다. 최근 이슬아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는 ‘짧고 좋은 글을 쓰는 게 어려워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모임에서 저는 TMW(Too Much Writer)를 자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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